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아프가니스탄 관계 (문단 편집) === 20세기 === 20세기가 되자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 혁명|혁명]]으로 무너지면서 [[소련]]이 출범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라크자이 왕조]]와 소련은 1919년부로 수교를 맺었다. 아프가니스탄 바라크자이 왕조는 소련을 최초로 인정한 정권 중 하나였다. 1920년에는 영국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아마눌라 칸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터졌고 이는 20세기 초반 아프가니스탄과 소련 사이의 우호관계 증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혼란상에 빠진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이 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은 아프가니스탄 측에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소련의 국가 무신론 정책에 반기를 든 우즈베키스탄의 보수 성향 무슬림들은 각지에서 바스마치 봉기를 일으켰고 일부 바스마치 봉기군이 국경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와 혼란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1954년에서 1978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으로부터 약 10억 달러에 상당하는 원조를 받았다. 소련의 원조를 바탕으로 아프가니스탄 왕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군대를 현대화할 수 있었다 한다.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쿠데타로 왕국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출범했다가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의 친소파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2차 쿠데타로 공화국이 무너지면서 친소 공산주의 정권인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이 출범한다. 그러나 곧 친소 정권의 급격한 국가 무신론 정책에 반발하여 아프가니스탄 향촌사회 각지의 무슬림들이 무장봉기를 시작하는데 이들이 바로 [[무자헤딘]]이다. 이때 아프간 정부는 권력 쟁탈전을 하고 있었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소련의 공화국들([[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도 이슬람 반군이 번질 것을 우려해서 기존의 정권을 뒤엎고[* 이때 대통령이던 하피줄라 아민은 [[KGB]] 요원들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이후 [[미국]]의 앞잡이로 규정되었다.] 바브라크 카르말을 수반으로 세운 괴뢰 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무자헤딘]]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소련군과도 맞서 싸웠으며, [[소련-아프간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아프간이 소련의 점령을 받았을 때 [[무자헤딘]]들은 소련에 대항을 했고 게릴라전을 펼쳤다. 결국 89년에 소련군은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아프간에 거주했을 때에는 1만명이상이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대부분은 아프간을 떠나고 일부만 잔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은 아프간내에서 실종된 소련군장병을 찾지 못하게 하고 거기에다 일부 러시아어 매체까지 폐쇄시킨 적도 있었다. [[탈레반]]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는 이란과 함께 [[북부동맹]]을 지원한 적이 있었다. 1997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탈레반]]의 위협에 우려를 나타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22094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